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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 나이 목사 딸 가족 바람 프로필 고향 사망 개그맨

by 네임네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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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 나이 목사 딸 가족 바람 프로필 고향 사망 개그맨

출생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망 2023년 4월 20일 (향년 67세) 캄보디아 프놈펜 29 스트리트 4번지 미래폴리클리닉

국적 대한민국

본관 달성 서씨

학력 대전삼성국민학교 (졸업) 부산대신중학교 (졸업) 대륜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신체 180cm, 69kg, 270mm, O형

가족 부인(2016년 재혼) 딸 서동주, 아들 서종우 딸 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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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프로필 나이 근황 고향 학력 윤석열 정계 입문 이전에는 어떤 사람?

 

종교 개신교

데뷔 1979년 TBC 라디오

경력 2011년 솔라그라티아 교회 담임목사

수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희극연기상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배우, 영화 기획자, 목사.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아버지 서우석(1920~1997,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과 어머니 정태순(1920~1988, 충청북도 청원군 출신) 슬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전 삼성국민학교, 부산대신중학교,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세원 개그맨 경력

1979년 TBC 라디오를 통해 데뷔한 후 대부분의 활동은 MBC에서 했으며 MBC에서 활동하는 동안 영 11,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당시 대한민국 대중들이 개그맨 하면 떠올렸던 "몸개그를 하거나 바보 흉내를 내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연예인"이라는 통념을 깨고 특유의 말발을 무기 삼아 말로 웃기는 개그맨의 길을 연 사람이다.

MC로서도 유능해서 훗날의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단순히 진행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 전설적인 개그맨이다.

서세원은 1980년대 중반까지 동시대의 라이벌들인 김형곤, 주병진보다 인기 면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물론 1980년대 중반부터의 압도적인 원탑은 후배인 심형래였다. 그러나 심형래 직전까지 서세원이 정상급 코미디언들 사이에서도 최고였던 것은 틀림없다. 다만 80년대와 90년대에 넷 다 원탑은 아니었다. 이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보감이라는 코너에서 서세원 최고의 유행어인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13][14]가 탄생했고 주병진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 당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도 서세원이 진행하는 영 11이었다.

또한 인기 연예인을 초빙해서 개그를 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후 KBS 2 TV에서 최양락이 네로 25시로 너무나 잘 나가자 MBC에서는 최양락의 대항마로 서세원을 다시 내세웠을 정도였다. KBS는 콩트 중심의 상황극, MBC는 유행어를 민다는 방향성을 보였었다.

이후 서세원은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 2000년대 초반까지 KBS 2 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서세원쇼'로 흥행하게 된다.

주 코너는 '토크박스'로 출연 연예인들이 서로 센 이야기들을 해서 서세원이 등수를 매기는 방식.

다만,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한국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인 일본 방송 베끼기다. 일본의 장수 인기 토크 프로그램 라이온의 고키겡요(ライオン のごきげんよう, 1991년부터 방송)의 코너 '주사위 토크'를 그대로 따라 했다.

그 외에 코미디 세상만사, '공포체험 돌아보지 마',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등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과 라디오 '가요산책',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의 진행자로 방송계에서 폭발적인 위세를 누리며 데뷔 2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김국진, 이경규 등의 탑레벨 개그맨 다음가는 1군~1.5군 정도의 위치를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둘보다 선배였고 이경규의 일밤 전성기 시절에도 서세원 역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로 나름 큰 인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주일이 암으로 사망하고 심형래가 영화 제작 문제로 빠진 21세기에, 후술 된 막장 짓거리들을 안 했더라면 서세원은 현재까지도 이경규보다 예능계에서 더 압도적인 권위를 가졌을 것이다.

즉, 서세원은 신인 때부터 인기를 끄는 스타로 시작하여 정통 콩트 코미디가 유행할 때는 콩트로, 연예오락(지금의 예능)이 유행할 때는 그 진행자로, 시대흐름이 바뀌어 오는 것에 따라 발맞추어 모두 성공했던 최강 커리어의 희극인이었다. 그야말로 전성기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 콩트, 토크쇼, 교양성 예능, 정통 예능까지 코미디언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진출해서 성공한 악마의 재능을 가진 자였다.

서세원은 콩트 프로그램을 하면 유행어를 여러 개 만들고, 예능성 진행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서 히트치 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마이더스의 손처럼 손대기만 하면 방송을 성공시키는 개그맨이었고 TV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했던 90년대에는 둘 다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최상위권으로 만들어 히트를 시켰을 정도였기에 서세원이 엄청났다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솔직히 과장 없이 말해도 연기력, 아이디어 응용 능력, 진행 능력, 기획 능력, 구성 능력 등 뭘로 봐도 연예인 및 방송인으로서의 능력치는 깔 게 없다. 사생활과 인간성이 비정상인 범죄 전과자라서 그렇지 그것만 정상이었으면 계속 경력을 이어가 지금 이 시대에도 노년 개그맨이나 진행자로 새로운 획을 그었을 수도 있다고 평가받는 특출 난 인물이었으며, 엄청난 연예인이었다.

서세원 사망

2023년 4월 20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한인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던 중 쇼크사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사망설이 제기된 적이 있어 관계자 및 주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진위를 확인하는 등 소동이 있었다. 그 뒤, 주 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에서 그의 사망을 확인했으며, 외교부와 경찰에서도 그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서세원이 사망한 캄보디아 프놈펜 미래병원 사진이 조세금융신문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서세원 사망 현장을 재혼녀가 지키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3살 연하인 서세원 재혼녀 정체도 밝혀졌다. 1980년생 음대 졸업 아쟁 연주자라고 하며 추정되는 사진도 공개됐다.

서세원의 사망 소식을 접한 딸 서동주가 입장을 내놨다.

서세원은 평소 지병으로 당뇨를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람들은 전처 서정희에게 저지른 자녀들에게도 향한 가정폭력을 비롯한 과거의 악행, 그 외 여러 논란들 때문에 추모하는 반응이 거의 없으며, 아예 관심도 주지 않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그의 추악한 행적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인과응보라며, 속 시원하다거나 잘 죽었다는 식의 조롱으로 반응했다.

오히려 한 짓에 비해 너무 편하게 갔다는 반응도 많이 나올 정도

서세원 딸 서동주

출생 1983년 3월 28일 (40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거주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본관 달성 서 씨 (達城 徐氏)

신체 168cm, 54kg, A형

가족 어머니 서정희, 남동생 서종우(1985년생), 올케

반려동물 반려견 클로이(2010년생), 레아(2016년생) 반려묘 코코(2015년생)

학력 예원학교 (미술과 / 중퇴) 페이 스쿨 (졸업) 세인트 폴 고등학교 (졸업) 웰즐리 칼리지 (미술학 / 중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수학 / 학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영학 / 석사)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로스쿨 (법학 / J.D.)

직업 미국 변호사, 작가, 방송인

소속 법무법인 정향 오네스타컴퍼니

대한민국의 작가, 미국 변호사 겸 방송인이다. 저서로 "동주이야기",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이 있다. 연예인 겸 사업가 서세원과 모델 서정희의 사이 1남 1녀 중 장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다가 현재 한국으로 귀국했으며 SBS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다.

행적

1983년 3월 28일, 서세원과 서정희 사이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한국에서 예원학교 미술과에 재학 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페이스쿨(Fay school)과 세인트폴(Saint Paul)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웰즐리 칼리지에 미술전공으로 입학했다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수학과 순수수학 전공으로 편입학하여 졸업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와튼스쿨) 마케팅 박사과정에 입학했으나 1년의 석사과정만 마치고 졸업.

2010년 1월 23일 스탠퍼드 대학교 내 교회에서 결혼했으나,# 2018년 5월 21일 본인 인스타그램에서 4년 전 이혼했고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로스쿨 졸업을 직접 밝혔다. (졸업사진)

2019년 5월 21일, 공식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후, 방송과 인스타그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현지 로펌 '퍼킨스 코이 (Perkins Coie)'에서 상표등록 분야에 관해 근무했으며 2019년 10월 국내의 엔터테인먼트사와 계약하고 미국변호사 생활과 방송 활동을 겸하겠다고 발표했다.

2020년 9월, 한국으로 귀국하여 머물다가 미국 로펌을 퇴사하고 2021년 1월부터는 한국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2022년 6월 27일 새로운 소속사 오네스타컴퍼니랑 전속계약을 맺고 연예계 활동에 나선다.

서세원 아들 서종우

서세원-아들-서종우

1985년 5월 15일생. 과거 나우누리 등 PC통신망에서 '랑랑'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으며, 푸하라는 유머 웹사이트에서 '프로 유머작가'라는 직함으로 자기 가족에 대한 글을 유머러스하게 연재하기도 했다. 여성동아 기사에는 이 시기의 사진과 일부 글들이 남아있다.

글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으며, 지금 기준으로도 재미가 있지는 않은 편이다. 자기 가족을 상당히 소박하면서도 단란한 이미지로 묘사하였는데, 당시 서세원은 KBS 최고 출연료를 자랑하면서 빌딩 몇 채를 소유한 상황이었으며, 아내에게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그 뒤 연예인으로 데뷔했다. 사실 서세원의 아이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도 방송을 타곤 했었는데,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비평이 이어졌다. 후에 서종우로 개명했지만 네이버에선 서종우라 검색하면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꼭 서동천이라고 검색해야 인물 정보가 나온다.

서세원 논란 범죄 행각으로 인한 연예계 추방

이미 1986년에 영화 〈납자루떼〉를 감독하여 쫄딱 망한 바 있던 서세원은  2001년에 조폭 마누라를 제작[2]하면서 대박을 거뒀다. 하지만 조폭 마누라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의 흥행은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었다는 평가. 이러한 평가는 비단 후세의 평가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개봉 당시인 2001년에도 존재했다. 그 밖에도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보조출연자로 진짜 조폭을 썼다는 루머까지 존재한다.

어쨌거나 당시 TV 쪽에선 서세원이 한창 끗발을 날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TV 쪽에선 이 영화의 성공이 꽤 과장되게 묘사되었고, 서세원 본인도 꽤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토크쇼 등지에서 "나폴레옹을 이해하겠다"거나,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국 영화계가 이제야 알 만할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날렸다. 그리고 실제로 조폭 마누라는 관객 142만 명으로 꽤 흥행한 편인건 사실이고, 서세원도 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정말 잠깐이었다.

이듬해인 2002년, 서세원쇼는 상당한 논란을 겪게 되었다. 사실 서세원쇼는 잘 나왔던 시청률과 높았던 인기와는 별개로 태생적으로는 프로그램 자체가 일본 예능 프로그램의 설정을 표절한 것에 불과하였을 정도로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제법 말이 많았던 프로그램이었고, 또한 진행 수준 역시 게스트로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서세원의 일방적인 갑질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히 공격적이었기에 방송 기간 내내 논란이 뒤따랐다.

국민 토크쇼 프로그램으로서 굴지의 인기를 누리는 한편 순 양아치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비판도 받았을 정도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던 서세원쇼는 2002년 6월, 수습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켰다.

서세원쇼의 6월 25일 방영분에서 게스트로 등장한 사람들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었던 김남일, 송종국 두 선수의 부모였다.

방영 불과 1주일 전인 6월 18일에는 16강전에서 한국과 이탈리아가 맞붙어 한국이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탈리아를 2:1로 깨뜨리는 이변이 일어났는데, 이 엄청난 성과로 8강 진출에 성공한 덕에 거스 히딩크 감독과 히딩크호 선수들은 국민적 스포츠 영웅으로 등극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서세원은 평소에 하던 대로 모욕에 가까운 토크를 이어 갔고, 특히 김남일 선수의 아버지를 상대로 한 조롱이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되었다. 자세한 전말은 서세원쇼 문서 참조. 이로 인하여 서세원쇼는 종영 청원까지 이어질 정도로 큰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한편 서세원쇼에서의 논란이 있은 지 1달도 되지 않은 시기인, 2002년 7월 19일 개봉한 긴급조치 19호가 그야말로 폭망 했다. 감독은 조폭 마누라의 감독이었던 김태규이지만, 서세원이 전작의 성공에 도취된 탓이었는지 지나치게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용을 보면 어차피 개입을 안 했어도 평작조차 될 수 없던 엽기 영화였다. 영화는 서세원쇼 극장판, 서세원식 징병제, 서세원의 인맥자랑에 불과한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PD들에게 돈을 먹인 것과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여 세금과 제작비를 포탈한 사실이 들통났다.

이때 영화계 쪽 사람들은 진작부터 전작인 조폭 마누라의 제작과 흥행에 대해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세원의 이런 빠른 몰락에 대해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서세원을 변호해주지 않았다. 사실할 이유도 전혀 없었지만 결국 긴급조치 19호 이후 서세원의 극적인 몰락은 이전작인 조폭 마누라가 지나치게 거품이 끼어있었던 것에 대한 반등이자 당연한 업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몰락한 서세원은 2002년 8월에 이미 검찰의 수사를 피하여 도피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로 인해 서세원쇼는 더 이상 참다못한 시청자들의 분노로 인해 짐짝처럼 버려져 8월 6일에 5년 10개월 간의 길었던 역사를 마감하고 종영되었고, 이 와중에 국외 도피 중 마카오에서 도박을 했다는 의혹까지 기사화되었다.

2003년에는 홍콩을 거쳐서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국제형사경찰기구에 수배까지 되었다. 결국 궁지에 몰려 2004년 귀국. 판결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06년에야 확정되었다.

참고로 이 시기 해외 도피로 서세원쇼를 펑크 내고 강제 종영시킨 것에 대해 KBS로부터 미운털을 제대로 박혔고, 이는 2009년에 행정안전부가 그에게 SBS 출연정지를 내리는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인 2004년, 도마 안중근을 제작했다. 하지만 평과 흥행 모두 망했고,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또다시 비리 혐의가 드러난 데다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출연정지 처분까지 내려지면서 방송 출연이 어렵게 되었다.

2010년 서세원이 각본과 감독까지 담당한 영화 젓가락이 개봉되었다. 하연주, 박무영 주연에 이수근이 조연, 남희석이 특별출연으로 나왔던 이 영화는 혹평마저 받지 못함은 물론 "이런 영화도 있었나?"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묻혔다. 전국 관객이 고작 488명에 불과했으니, 단순 계산을 해도 400만 원이 안 되는 수익이다.

결국 영화 질이 떨어지니 그에 걸맞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덤으로 얼마나 망했는지 VOD로는커녕 DVD 같은 2차 매체조차 단 한 개도 안 나와서 이젠 보고 싶어도 볼 방법이 없다. 2010년대 이후 상업영화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케이스다.

한 때는 스타였으나 스스로 저지른 각종 범죄들로 인해 처참하게 몰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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