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프로필 나이 근황 고향 학력 윤석열 정계 입문 이전에는 어떤 사람?
출생 1985년 3월 31일 (38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로 38길 76 포레나 노원
등록기준지 대구직할시 중구 달성동 (現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본관 광주 이 씨
현직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이준석 프로필 나이 근황 고향 학력 윤석열 정계 입문 이전에는 어떤 사람?
약력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의 대표 교사로서 활동하다 2011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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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0대 총선, 2018년 2018년 재보궐선거, 2020년 21대 총선에서 모두 노원구 병에 각각 새누리당, 바른 미래당, 미래통합당의 당적을 가지고 출마하였고 3번 연속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그 과정에서 지상파와 종편 방송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그러다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여 36세의 나이로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최연소 제1야당 대표가 되었다.
임명직, 선출직을 통틀어 공직을 맡은 경력이 전무한 최초의 제1야당 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22년 5월 10일 임기가 시작됨에 따라 위 기록들을 그대로 가져온 최초의 집권 여당 당대표가 되었다.
2022년 7월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성접대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교사 혐의와 관련하여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의결하였다. 이에 따라 당대표 직무가 정지되었고, 2023년 6월에 만료될 당대표 임기 중간에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직무정지 기간 중 윤석열-권성동 텔레그램 논란이 발생하면서 당내에서 비대위로의 체제 전환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발생했고, 이에 맞서 이준석은 법원에 연속적으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처음에는 주호영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해 주 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했으나, 이후 당헌 개정을 통해 새로 임명된 정진석 비대위원장에 대해서는 가처분신청을 기각해 새로 출범한 비대위의 효력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10월 7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당론에 맞선 가처분신청 제기와 당 구성원에 대한 모욕적 발언을 사유로 당원권 정지 기간을 1년 연장하여 총합 1년 6개월 동안 당원권이 정지되었다. 결국 가처분신청 기각과 2차례의 징계를 통해 당대표직 상실이 완전히 확정되었다.
정계 입문 이전
1985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계동 오성빌라에 거주하며 온곡초등학교에 재학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오성빌라의 반지하 층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 상계동에 살다가 아버지가 해외로 발령이 나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 1년씩 있었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정착한 곳은 목동이었다.
월촌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고등학교 13기로 입학하여 학생회장을 역임한 후 조기졸업하였다. 이후 카이스트에 1~2달 남짓 다니다가 중퇴하고, 하버드 대학교 서류전형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이후 여러 방송에서 하버드 합격 에세이 관련해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서울과학고 학생회장시절, 전산실에 있는 컴퓨터들이 낡아서, 간단한 검색이나 프로그래밍 외에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한국에서 열렸던 2002년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삼성 등의 회사에서 홍보부스를 차려 자사 최신기종을 홍보했는데 행사가 끝난 전시용 최신 컴퓨터를 서울과학고에 기증하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 삼성과 연락했을 때는 삼성 측에서 당황하며 고등학생이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인 줄 알았다고. 그 이후 결국 삼성으로부터 최신형 컴퓨터 12대가량을 얻어왔고 이 내용을 하버드 에세이에 녹여내서 입학사정관 전원의 합격 의사를 받았다고 한다.
(하버드 에세이는 입학사정관 3명이 각자 읽은 후 '합격' 동그라미를 치는데, 3명 전원이 치면 합격이고, 1~2명이 보류하면 후에 재논의한다고 한다.)
입학이 확정된 후, 국비 유학생(대통령과학장학금)[4]에 선발되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하버드대 한인학생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하버드 재학 당시 동기 금수저들은 방학만 되면 호화 여행을 떠나는데, 본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기 중에도 주에 20시간씩 컴퓨터 수리 알바를 했다고 한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의 친구인 유승민 당시 국회의원의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훗날 2021년 유승민 의원이 매불쇼에 출연해 대담을 나누는 와중 의원실 인턴 이준석은 어땠냐고 패널이 물어보자 뭐... 별 기억 없는 거 보면 별로 열심히 안 했던 것 같다 고 자당 당대표를 디스를 하기도 했다.
2학년에 올라가서는 한화증권 금융공학팀에서 일한 걸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방학중에는 한국에서 틈틈이 교육봉사를 진행하였는데, 이른바 하버드 영어 흑기사(HCKISA)라는 하버드 유학생 영어 무료 과외봉사 팀에 들어가 수업을 진행했다. 이는 훗날 이준석이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2005년 당시 이준석의 사진이 있는 신문기사
이준석이 막 하버드에서 재학중일 당시, 이준석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하버드를 다녔던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페이스북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교내 학생 전용앱이었고, 몇 년 뒤에야 대중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그것도 컴퓨터 전공으로 하버드에 재학 중이던 이준석은 남들보다 몇 년 먼저 페이스북을 접한 극 소수의 사람 중 한명일 가능성이 크다.
졸업 후에는 이미지브라우저 개발업체인 이노티브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2007년 11월부터 복무하여 2010년 9월 복무만료 하였다.
이 과정에 2010년 8월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사업에서 350명의 지원자 중에 100명에 선발되어. 9월부터 시작된 1기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강용석 의원이 8일 이상 무단 결근하면 산업기능요원 편입이 취소되어 현역 입대해야 하기에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했으나 해당 업체 동의를 받아 혐의 없음 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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