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치인으로, 제100·101대 내각총리대신이다. 아소 다로 이후 12년 만에 나온 보수본류 출신 총리이기도 하다.
출생 1957년 7월 29일 (65세) 도쿄도 시부야구
재임기간
제100대 내각총리대신
2021년 10월 4일 ~ 2021년 11월 10일
제101대 내각총리대신
2021년 11월 10일 ~ 현직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나이 프로필 생애 제100·101대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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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유민주당의 파벌 중 보수본류이자 온건파에 가까운 굉지회(宏池会)의 영수를 맡고 있다.
한국에선 이시바 시게루 의원만이 자민당 내 대외 온건파인 듯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시다도 자민당에서 온건파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2021년 9월 29일, 자민당 27대 총재로 선출되었다. 이후 일본 국회의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 투표를 거쳐 10월 4일 제100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였다. 2021년 10월 31일 실시된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약 30일 만에 101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하였다.
출생
1957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출생했으며, 본적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히지야마초이다. 기시다의 가문은 히로시마를 기반으로 3대째 정치가를 배출해온 명문이다. 할아버지 마사키(正記)는 만주에서 백화점 경영, 부동산 사업 등으로 큰 부를 쌓아 이를 기반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냈고 아버지인 기시다 후미타케는 통상산업성 관료, 정치인이었다.
학창 시절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통산성 관료였던 아버지가 뉴욕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관계로 뉴욕에 거주하며 공립학교에 다녔다.
귀국 후 치요다구립 나가타초 초등학교의 3학년에 편입, 치요다구립 코우지 마치 중학교를 거쳐서 카이세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쿄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삼수까지 했지만 결국 와세다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였다.
기시다 후미오의 집안에는 관료가 많았고 이들 전원이 도쿄대학 출신이다.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통상산업성 관료, 중의원), 삼촌 기시다 슌스케(대장성 관료, 히로시마은행 회장), 고모부 미야자와 히로시(자치성 관료, 참의원), 고종사촌 미야자와 요이치(대장성 관료, 참의원)에 더해, 매제인 기무라 요시히데(재무성 관료)와 가베 데쓰오(재무성 관료)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일가가 도쿄대학 출신 관료 일족인데 비해 기시다는 와세다대학에 은행원 출신이라 튀는 편이다. 까놓고 말해 도쿄대학 - 관료 루트를 타는 것이 당연한 집안에서는 열등생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와세다대학이 일본에서 명문대로 인정받는 것은 맞지만, 그건 일반인 기준이고 정관계 엘리트들에게 있어서는 와세다는 도쿄대학 - 관료 루트와는 별개로 취급된다. 대학 졸업 후 기시다는 일본장기신용은행에 입행하였다. 이곳도 버블 붕괴와 함께 망하긴 했지만 엘리트 회사로 일컬어지던 곳이었다.
기시다가 관료가 되기 힘들었던 이유가, 일본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1종 공무원시험 합격자들은 보통 재학 중 시험에 합격하고 부처에 면접을 보아 대학 졸업 후 바로 가스미가세키에 입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 궤도를 이탈해서 적기를 놓치면 한국과 다르게 사실상 입성이 어렵다.
특히 대장성이나 통산성, 자치성과 같은 일류 중의 일류 관청은 현역 도쿄대 법학부생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관계는 도쿄대 법학부와 비법학부의 차이도 심해서, 재무성의 경우 역대 사무차관 중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 아닌 경우는 딱 세 명이다.
그래서 외무성의 외교관도 법학부생 비율이 높고, 방위성의 경우도 상층부의 경우 방위대학교를 나온 자위대 장교 출신보다는 도쿄대 법학부 출신 방위관료가 많다. 외교관 퇴직 후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가기도 한다.
그런데 기시다는 삼수 출신에 와세다 출신이라 애초에 일류 관청엔 들어가기 힘들었다. 당시 와세다나 게이오의 졸업생은 대부분 기업에 들어갔고 관료가 된 인원은 별로 없다. 기시다 역시 도쿄대에 진학했다면 젊은 시절 중앙 성청 관료로 일하다 부친의 비서를 거쳐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목표였을 확률이 높다.
한국의 정치인들에 비추어, 기시다가 관료가 되었더라도 적어도 20년 이상 근무하며 주무 과장이나 국장 정도는 맡아야 정치 입문을 위해 내세울 만한 경력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여겨 차라리 사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젊은 시절 잠시 관료로 일한 엘리트 청년들이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히려 한국처럼 수십 년간 정부에서 근무하며 고위직 공무원을 지낸 사람들은 국회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의 경우, 선거에 떨어져도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는 판사나 검사를 제외하면 행정부 관료, 경찰 간부, 국군 장교, 외교관 등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출신 국회의원들의 경우, 내세울 수 있는 고위공무원 직위를 역임한 뒤 정계에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정당과 지역민은 이들에게 고위 공무원으로서의 국정 경험과 능력, 그리고 인맥을 발휘해 일해주길 원한다.
관료 출신 정치인 중 행정고시 출신인 박성훈 전 부산 경제부시장의 경우 40대 후반에 정치권에 영입되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젊은 축에 든다. 보통 행정고시 관료 출신들은 50대 후반은 되어야 국회에 입성한다. 예외적인 경우로는 정말 파격적으로 발탁되거나 일본처럼 세습 정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21대 국회의 오영환 의원은 비고시 출신의 현장직 소방공무원 출신이거나 양금희 등과 같이 중등교사나 초등교사가 공천을 받는 사례가 있지만 전자는 청년 공천 + 특정 후보 대체 사례이고 후자는 특정 후보 대신 나온 케이스로 볼 수 있다.
한편 국회에 일부 관료 출신 세습 정치인이 있는데, 정우택, 이종구의 케이스를 봐도 이들은 아버지의 기반이 있음에도 자신들도 행시 출신으로 40대 중반~50대까지 근무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정치인 가문 출신으로 행시에 붙어도 진짜 아버지 이름만 믿고 별 경력도 없는 어린 나이에 출마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중앙성청 관료나 지자체 관료 출신이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의 이른 나이에 퇴직하고 정계 입문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형 정당에서 그런 청년들을 심사해 지역구 지부장을 맡기고 공천을 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직 관료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위 공무원의 직무 경험과 인맥과 같은 공직 경력, 네트워크를 선호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국가공무원채용 1종시험을 통과하고 부처 면접에서도 선별되어 중앙부처 관료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전도유망하고 똑똑한 청년을 잘 키워내는 것이 지역민과 정당의 목표인 것이다.
그래서 관료 출신이라고 해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이들의 경력을 보면 중앙성청에 입성해 유학 경력까지 포함해도 10년이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과장은커녕 계장까지만 하고 나오는 케이스가 많다. [13]
이런 정치 문화 덕분에, 관료가 되는 것은 정치인 가문 출신이 아닌 기반 없는 청년이 국회의원이나 현지사, 시장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에 해당된다. 일단 고시에 통과한다는 것이 유능하다는 것과 동일시되기에 웬만하면 대부분의 정당들이 이들을 믿고 공천을 준다.
한국은 일본과 프랑스와 다르게 이런 식의 행정부 청년 관료를 대상으로 한 정치권 영입 문화가 전무하며 그나마 법조계에서 청년 인재를 영입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정치 특성에 따른 방향성, 정치문화의 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마키 유이치로, 스즈키 게이스케, 스즈키 노리카즈, 오가와 준야, 고바야시 다카유키, 야마다 미키, 이노우에 신지 등 당을 불문하고 다양하게 있는 관료 출신들은 모두 빠르면 20대, 늦어도 30대 중반에 관을 떠났다. 그래서 빠르면 30대, 늦어도 40대 중반의 나이에 4선, 5선 의원이 되었다. 오히려 호소다 히로유키처럼 중앙성청 과장직까지 역임하고 나온 중견 관료 출신은 희귀할 정도이다.
한국에서 정치권 영입대상인 차관이나 청장, 중앙부서 국장급 인사들은 주로 은퇴한 후 공기업, 대기업, 중견기업 이사, 고문직 혹은 교수직으로 가기도 하고 나가미네 야스마사와 같이 타 부서나 공공재단으로 이동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일본 국회에서는 젊은 나이에 첫 당선되는 경우가 많고 다선 의원들이 많아 늦은 나이에 입당하는 것이 불리한 편이다. 늦은 나이에 선거에 뛰어들 경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차선책으로 참의원 선거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의원 선거에 뛰어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총리, 장관을 하기에는 선수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정무차관 하기에는 직급 상 사무차관과 차이도 거의 없고 연령 상 직무 수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젊은 국회의원들이 많고 선수를 많이 쌓아야 뭘 할만하니 대부분 젊은이가 들어오는 것이다.
한국은 바깥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오니 평균 정계입문 연령도 높고, 재선, 삼선만 되어도 할만하니 전문성을 쌓은 고위 관료 출신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도 고위직 출신이 인맥 네트워크를 이용해 예산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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