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야스쿠니 신사란 참배란 공물이란 뜻 봉납 256만여 명을 신격화?

by 네임네 2023. 4. 22.
반응형

야스쿠니 신사란 참배란 공물이란 뜻 봉납 256만여 명을 신격화?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 명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 일본 최대 규모의 신사(神社)로,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어 군국주의를 조장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야스쿠니 신사란 참배란 공물이란 뜻 봉납 256만여 명을 신격화?

도쿄 중심가인 지요다[千代田] 구에 위치한 일본 최대 규모의 신사이다. 신사(神社)란 일본 황실의 조상이나 신대(神代)의 신 또는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을 말한다. 본래 메이지[明治] 일왕 시절 일본 군인들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1869년 '쇼콘샤[招魂社]'라는 명칭으로 창건됐으나, 1879년 '평화로운 나라'라는 뜻의 야스쿠니로 개명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문빈 아스트로 사망 여동생 키 나이 프로필 보컬 댄스 특징 MBTI

벤틀리 벤테이가 가격 시승기 v8 연비 제원 대형 suv

gv70 전기차 가격 하이브리드 제네시스 제원 연비 시승기

야스쿠니 신사는 청일전쟁 · 러일전쟁 · 만주사변 · 제2차 세계대전 등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숨진 군인 및 민간인 246만 6000여 명의 위패를 보관해 두고 이들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유물 및 전범들의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 제사는 매일 지내며 봄·가을에는 대규모 위령제를 열고 일본 건국일(2월 11일) 등 기념일에는 수시로 각종 행사를 벌인다. 특히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에는 우익들의 순례성지로 변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왕실이 경비를 부담하는 특별 관폐(官幣) 신사로서 제국주의 시절에는 군국주의 확대정책을 종교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일왕 숭배와 군국이념을 조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국영 신사라는 지위가 박탈되면서 국가관리에서 벗어나 일개 종교법인으로 격하됐으나, 국가적 보호를 둘러싼 논의는 현재까지도 분분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도조 히데키 전 총리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合祀)되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총리나 각료의 공식참배 여부가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

이후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최초로 총리 자격으로 공식참배를 하였으며, 이에 일제침략을 받은 한국과 중국은 '총리가 전범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고 거세게 항의하였다. 따라서 그 이후에는 외교상의 문제로 총리의 공식 참배는 없었지만 '개인자격'으로 신사를 찾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총리가 되기 전 선거공약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일 년에 한 번씩 참배하겠다고 공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총리가 된 후 2001년 8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여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으로 서명하면서 국내외에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후 신사참배의 공사(公私) 성격문제가 논란이 됐으며, 일본 정부는 '사적참배'였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2년 4월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3대 행사인 봄 대제(大祭)를 하루 앞두고 다시 야스코니 신사를 방문,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방명록에 적어 넣었고, 2003년 1월 14일에 이어 2004년 1월 1일에도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전격 참배하는 등 총리 퇴임 전인 2006년까지 지속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였다.

뒤를 이은 아베 신조 총리는 재임기간(2006~2007)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지만, 2012년 10월 17일 자민당 총재로서 야스쿠니 추계대제에 참석하면서 총리 재임 당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2012년 8월 15일, 일본의 현직 각료인 마쓰바라 진(松原仁)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羽田雄一郞) 국토교통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불거진 한국과 일본 간 외교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일본 민주당 정부 각료가 이른바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2009년 9월 민주당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민주당은 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막아 왔다.

그러나 2012년 12월 16일 진행된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고 재집권에 성공, 아베 전(前) 총리가 26일 일본 총리로 다시 정식 지명되었다. 이에 따라 보수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보수파로 꼽히는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가 높아졌다.

실제 2013년 2월 8일 아베 신조 총리가 각료들의 신사참배에 대해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발언하여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허용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日기시다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봉납 참배 보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21일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 된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도쿄(東京) 구단시타(九段北) 소재 야스쿠니 신사의 봄 제사 춘계(春季) 예대제(例大祭·제사)가 시작된 데 맞춰 공물인 마사가 키(真榊)를 봉납했다.

그는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봉납했다. 예대제는 22일까지 이틀간 열린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의 공물 봉납과 관련 "사인(私人·공적 지위, 위치에서 떨어진 개인)의 입장에서 봉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부로서 견해를 말씀드릴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총리 취임 전 야스쿠니 신사에 마사가 키를 봉납한 적 없다. 하지만 2021년 10월 취임 직후 열린 추계 예대제와 지난해 4월 춘계 예대제·10월 추계 예대제에는 마사가 키를 봉납한 바 있다. 지난해 패전일인 8월 15일에도 참배 대신 공물인 다마구시료(玉串料)를 봉납했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의 대응을 답습한 것이라고 NHK는 전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도 21일 마사가키를 봉납했다.

특히 NHK는 기시다 총리가 예대제 기간 동안 참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지통신도 기시다 총리가 참배를 보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직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2013년 12월 아베 전 총리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아베 전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국·중국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에게까지 '실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중 봄 제사, 가을 제사, 패전일인 8월 15일 때마다 참배 대신 공물 혹은 공물 비용을 봉납했다.

야스쿠니-신사

이날 일본 초당파 의원 모임인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87명은 야스쿠니 신사에 집단 참배했다.

87명 가운데에는 기시다 내각의 오구지 마사키(大串正樹) 디지털 부(副) 대신, 코지마 도시후미(小島敏文) 부흥 부대신, 미야모토 슈지(宮本周司) 재무 정무관 등도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근대 100여 년 간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숨진 246만 6000여 명의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 강제로 전쟁에 동원됐던 한국인 2만여 명도 합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응형

댓글